2월 2일 그 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 김종윤 목사 | 2025-02-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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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 자란 가정을 원가족(Family of Origin)이라 합니다. 어려서 맺고 있었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한 개인의 자아정체성과 정서적 안정감의 기초토대가 됩니다. 아울러 어떤 관계 유형을 맺느냐에 따라 의사소통의 방식이나 갈등 해결을 위한 선택이 결정된다고 하는 점에서 원가족은 인생의 모판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신앙과 가치관의 형성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완전한 원가족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원가족으로부터 받았든 영향을 솔직하게 돌아보고 그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관계설정을 위하여 마음을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원가족은 분명 상당하게 우리 삶의 기초를 형성하지만 궁극적인 성장과 열매는 우리들 자신의 선택과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입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일부분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고집을 피우거나 ‘왜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냐’고 윽박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드러날 수 있음을 알고 충분히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고향 사람들은 변화를 놀랍게 여기면서도 예수님을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요셉의 아들”로서만 대하려고 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익숙한 곳,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슬픔 속에서 주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편견과 불신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오히려 가장 멀게 느껴지게 합니다. ∙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 – 하나님의 일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인간적으로는 실망스러운 때가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더욱 새롭게 할 기회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일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완전한 실패입니다. 그 실패를 하나님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십니다. 그래서 상황과 때, 그리고 장소까지 아무런 문제가 아닙니다. 고향 사람들의 배척과 편견을 확인하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가장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일어났던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특히 주님은 일부러 당시에는 이방인들이라 취급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던 사례들을 언급하셨습니다. 사실 엘리야가 만났던 사렙다의 과부는 얼마 남지 않았던 음식으로 아들의 마지막 먹거리를 마련하던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악조건속에서도 역사를 감당합니다. ∙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나라 – 내 생각을 내려놓으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언제나 조건이 같다고 결과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상황과 조건을 감당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심혈을 기울이셨던 것은 상황과 여건이 아니라 그 일을 감당할 사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의 소속이나 위치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오히려 주님은 일부러 이방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기대하고 꿈꾼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으면 달라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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