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생명의 풍요함 | 김종윤 목사 | 2025-08-03 | |||
|
|||||
교회에 들어온 화분 중에 고무나무가 있었습니다. 길게 뻗어난 가지 끝에 몇 안되는 나뭇잎이 저거 오래 못 가지 했더랬습니다. 볼품없게 남은 가지도 실하지 않았던 고무나무는 교회 뒷뜰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다가 화분마저 세차게 바람불던 날에 깨져서 그랬는지 결국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가끔 뒤뜰에 나갈 때면 한 쪽에 내버려진 그 고무나무가 아쉽게만 여겨졌습니다. 당연히 그냥 그렇게 끝난 줄 알았습니다. 화분도 없이 다른 마른 나무들과 함께 버려져 누워 있었으니 다시 살아날 거라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 고무나무가 저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자기 아직 안죽었노라고. 아니 비록 이렇게 내동댕이치듯 버려졌지만 새로운 가지를 내었노라고.... 생명의 신비는 정말 놀랍습니다. 버려졌다고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숨만 쉬고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겁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에는 그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죽지 않고 살아있음의 의미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는 유산 분배 문제를 두고 형과 다투고 있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받지 못했던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 문제에 개입해서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단호하면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소유가 중요하지만 그것에만 집착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수단이 되고 맙니다. ∙ 오늘 밤 내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 내일의 준비와 함께 필요한 것은 오늘의 신실함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그 형편에 따라 각각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기에 모든 사람에게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이유들이 다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다르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주장할 겁니다. 그러나 바로 그 ‘나로서의 최선’이 어쩌면 삶을 어리석게 했던 가장 큰 요인이었는지 모릅니다. 비유 속의 부자는 부지런했고 나름대로 생각을 했고 자기 딴에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자부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사람의 어리석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 – 풍부함의 원천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아무래도 부족하면 어렵습니다. 이것저것 필요한 것이 있는데 넉넉하지 못하다면 자연히 위축되고 다른 여러 가지 일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풍요로운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더욱 아무리 지혜롭게 다가올 내일을 준비한답시고 있던 창고를 뜯어고친다고 해도 그날 밤 그 영혼을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게 되면 그 준비했던 것들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말씀은 미래에 대한 준비가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먼저 살피고 돌아보아야 할 부분들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권면입니다. 풍부함의 원천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 원천이 되십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