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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회복을 위한 부르심 김종윤 목사 202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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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비유들은 한가지 공통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의 의미는 비유가 이어질수록 여러 가지로 강화되고 있습니다. 우선 숫자에 있어서도 양 백마리 중에서 하나로부터 시작해 열 드라크마 중에서 하나로 그리고 잃어버린 동생 하나에 이를 정도로 극적이기까지 합니다. 특히 마지막 세 번째 소개된 비유는 이전의 다른 두 개의 비유와는 또 다른 의미로 회복을 위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들을 통하여 모든 회복의 이야기들이 그냥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회복을 위하여 오늘 우리가 돌아보고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 – 회복을 위해서는 아버지를 알아야 합니다.


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해서 먼 타국으로 떠났던 둘째가 다시 찾아야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허랑방탕하게 쓰고 탕진했던 재물도 잃어버린 것이었지만 그가 알게 된 것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은 아버지의 유산만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가 밑바닥에서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은 말도 안되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라도 붙들고 싶었던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록 모든 것을 잃어버린 빈털터리였지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한 것이었습니다. 회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버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 회복을 위해서는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비유가 이전의 두 비유와는 다른 점은 큰아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큰아들은 집을 나갔던 작은 아들과는 달리 성실하게 아버지 곁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왔던 작은 아들을 반갑게 맞으면서 잔치를 벌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과는 달리 큰아들은 분노하고 화를 내면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큰아들을 달래기 위하여 나온 아버지에게 큰아들은 그동안 참고 있었던 자신의 속마음을 전하면서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회복을 위해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은 이 큰아들의 서운함과 분노입니다. 참된 회복을 위해서는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복을 위한 부르심이 단순하지 않은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 참 회복이 즐거움과 기쁨을 가져옵니다.  


잔치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큰아들이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성경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대답을 이 비유의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 해보라고 하시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속회의 날을 하면서 나누어야 할 중요한 주제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다만 성경에서 전해주고 있는 것은 큰아들을 향하여 하고 있는 아버지의 대답입니다. 아버지는 화가 난 큰아들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여전히 화가 나서 토라진 아들을 향하여 “얘”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털어놓는 속마음을 들었던 큰아들은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참된 회복이 가져오는 즐거움과 기쁨은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안타까움과는 얼마나 비교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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