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여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에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가장 무서운 개는 무엇일까요? 도사견이나 불독이 아닌 바로 편견이랍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한번 붙잡히면 웬만해서는 벗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편견이란 어떤 개인이나 대상에 대하여 갖게 되는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런 편견에 한번 빠져들어 가기 시작하면 객관적인 판단보다도 주관적인 입장에서 선택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좀처럼 다르게 생각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 편견에 붙잡힌 사람...
다메섹으로 오던 도중 눈이 멀어 버린 사울을 찾아가 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아나니아는 쉽게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들었던 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 대하여 들었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라고 하여도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지금 달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편견은 변화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지나간 과거만을 이야기 해줄 뿐입니다. 편견에 붙잡힌 사람은 비전을 받을 수 없습니다.
? 주님이 주시는 비전...
주님께 중요한 것은 과거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지난날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앞으로의 모습으로 우리를 보십니다. 주님을 만나면 신이 나는 이유는 우리의 미래를 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가지고서는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역사는 기존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뜨리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벗겨진 비늘...
말씀에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가서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안수하는 아나니아의 모습은 편견을 넘어선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편견을 넘어서는 순종을 하게 될 때 경험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을 위하여 기도할 때 사울의 눈에서는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사울은 다시 볼 수 있었지요. 저는 우리교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를 붙들고 있는 편견의 비늘들이 깨끗이 떨어지고 새롭게 볼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길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줍니다. 사람의 말보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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